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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심리학

19세기의 철학자

by toritoto 2024. 3. 10.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독일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1900년 8월 25일)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그는 그리스도교의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하였고, 이성적인 것들은 실제로는 비이성과 광기로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하였다.
니체는 전체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파시스트들에게 왜곡되기도 했다. 진리의 가치를 묻는 그의 질문은 해석상의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그는 안티크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망상으로 도덕이나 종교, 문화, 역사 등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왜곡했다고 말하였다. 이는 유대인 혐오의 근거가 되기도 했는데 니체에 의하면 유대인은 세계의 외면은 물론 내면도 포함해 모든 것을 사기 날조로 전복하는 운명적 민족이자 노예 혹은 약자로서 중요성이 있으며 귀족 같은 정신을 가진 고귀한 자들의 진정한 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니체는 강자의 입장을 예찬하면서도 때때로 약자의 도덕 등을 칭송하기도 해서 모순되는 점이 있기도 하다. 관념론과 기독교는 세계를 두 개로 구분 짓는다. 이를테면 기독교는 이승 이외에도 하늘나라가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플라톤은 세계를 현상계와 이데아계로 이분한다. 니체는 이러한 구분에 반대하며 '대지에서의 삶을 사랑할 것'을 주창하였다. 또한 현실에서의 삶을 비방하는 자들을 가리켜 퇴락한 인간이라 부르며 비판하였다. 이렇듯 '영원한 세계'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니체는 관념론적 형이상학에 반대한다. 니체는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달리,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멸망적 교리만을 전했다며 기독교를 비판하였다.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독일어: Karl Marx ˈkaɐ̯l ˈmaɐ̯ks,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는 독일의 공산주의 혁명가, 혁명적 사회주의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정치이론가, 언론인이다.
그의 대표작은 1848년 출간된 소책자 《공산당 선언》과 3권짜리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과 철학사상은 그 이후의 사상사, 경제사, 정치사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으며, 마르크스주의라는 일대 학파를 이루어 그 이름은 보통명사, 형용사화되었다. 그는 트리어 출신이며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843년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했다. 정치성 다분한 저술 활동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무국적자 신세로 수십 년간 영국 런던에서 처자식과 함께 망명 생활을 했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합작,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연구하며 주요 저작을 남겼다.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정치이론을 집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라 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간 사회가 계급투쟁을 통해 발전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와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으로써 나타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지 여부다.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에 의해 통제되며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로 부려 먹힌다. 소위 사적유물론이라는 비판 이론에 의해 마르크스는 과거의 사회 경제체제들이 그러했듯이 자본주의 체제 역시 내재한 결함에 의해 내부적 긴장이 발생할 것이며 그 긴장에 의해 자멸하고 사회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하였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불안정성과 위기 취약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 적대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의식화된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마침내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개요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예측이 현실화되기를 앉아 기다리지 않고, 노동계급이 혁명적 행동으로써 자본주의를 쓰러뜨리는 사회경제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저술·출판작업에 평생 매진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독일어: Arthur Schopenhauer, 1788년 2월 22일 ~ 1860년 9월 21일)는 독일의 철학자다.
쇼펜하우어는 1820년 대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를 통해 불교와 힌두교에 관해 알게 되었다. 이 종교들의 핵심 교리에는 자신과 칸트가 도달한 결론과 같은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먼 과거의 동양 사상가들이 서양과는 전혀 다른 언어, 환경, 문화 속에서 근대적인 서양철학의 과제에 대해서 같은 결론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발견을 쇼펜하우어는 글로 써서 남겼고, 서양에서 최초로 동양철학의 세련된 점을 독자들에게 알려주었다. 쇼펜하우어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간의 유사성을 말한 철학자이자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노골적으로 표명한 독창적인 철학자로 손꼽힌다. 19세기 말에 유행하여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칸트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칸트의 사상을 올바르게 계승했다고 확신하였으며, 당대의 인기 학자였던 셸링, 헤겔, 피히테 등에 대해서는 칸트의 사상을 왜곡하여 사이비 이론을 펼친다며 비판하였다. 쇼펜하우어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쓰는 철학(인식론)의 고전이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 때부터 수년 간을 쓰기 시작하여 1818년에 출간하였으며, 대학 강의에서 헤겔과 충돌한 후 대학교수들의 파벌을 경멸하여 아무런 단체에도 얽매이지 않고 대학교 밖에서 줄곧 독자적인 연구 활동을 지속하였다. 이후 자신의 철학이 자연과학의 증명과도 맞닿아 있음을 라는 책에서 주장하였다. 그 뒤에 윤리학에 대한 두 논문을 묶어 출판하였다. 가 출판된 지 26년이 지난 1844년에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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