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또는 히포의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년 11월 13일 ~ 430년 8월 28일)는 4세기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기독교 신학은 물론 서양 철학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쳐 아우구스티누스주의(Augustinism)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 중요함이 인정되었다. 그의 신학이 그리스도교 발전에 끼친 영향은 구원에 대한 교리를 정리한 사도 성 바오로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과 지식의 관계에 대해 신앙이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신학과 철학, 그리고 신학과 일반 학문을 함께 연구하는 중세의 스콜라 학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에게 있어 중요한 신학적 공헌은 은 총론이다. 펠라기우스의 선행구원론을 반대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강조한 구원을 남겨주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에서 성인으로 공경 되고 있다. 축일은 8월 28일. 상징물은 주교관과 목장, 책, 펜이며, 인쇄공과 신학자의 수호성인이다. 일반적으로 집필에 몰두하는 주교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15세기의 그림에는 주변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거나 조가비가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의 신학적인 사상은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성 보나벤투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 가톨릭 관련 인물들은 물론 마르틴 루터, 장 칼뱅 등의 개신교 신학자와 존 밀턴 같은 시인, 르네 데카르트, 한나 아렌트, 실존주의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 장폴 사르트르, 한나 아렌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들에게도 두루두루 영향을 끼쳤다.
-피에르 아벨라르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년 ~ 1142년 4월 21일)는 혹은 피터 아벨라드는 중세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로써, 흔히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아벨라르는 1079년 프랑스 서부 낭트 인근 르팔레라는 곳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수사신부이자 영주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보편 논쟁의 양축을 형성했던 유명론과 실재론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인식론과 형이상학 체계를 구축, 가정 교사로 가르쳤던 제자이자 후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녀가 되는 엘로이즈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아벨라르는 당시 실재론 진영을 대표했던 샹포의 기욤과 친분을 쌓은 뒤, 1102년 파리 근교에 입성, 교육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하게 됨에 따라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기욤과 결별하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미니코회 수사신부로써 중세 그리스도교 서방교회의 유명한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이다. 또한 자연신학의 으뜸가는 선구자이며 서방교회에서 오랫동안 주요 철학적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는 토마스 학파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교회학자 33명 중 하나이며, 현재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를 신학자요 박사로 존경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의 이름을 딴 학교나 연구소 등이 많이 있으며, 또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그리스도교 교리를 조화시켰으며, 당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최고 전문가였다.
그는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하여 스콜라 철학을 대성한 중세 기독교 최대의 신학자이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할 때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을 완성시킨다"는 태도를 갖고 은총과 자연, 신앙과 이성 사이에 조화로운 통일을 부여했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고상한 부분이므로 인간이 자연 전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신의 존재를 추론(推論)하는 것은 신을 찬미하는 길인 것이다. 그의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전 자연은 신이 창조한 것이다.
우선 그의 존재론(存在論)은 신학 전체의 특징을 이루는 것으로 실체적 색채가 강하다. 신과 피조물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는 '존재의 유비'를 사용, 유비와 참여의 개념에 의해 동일성 안에 차별을 갖고 있는 존재의 파악을 가능케 하여 불가지론과 범신론의 위험을 피하였으며 본질구조의 규정원리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형상, 가능태와 현실태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둔스 스코투스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년~1308년)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콜라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복자이며 '영민한 박사'(Doctor Subtilis)라고 불렸다.
스코투스는 기독교의 유신론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에 대한 존재의 논증을 비판하였다. 본디 논증은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거꾸로 결과로부터 원인을 증명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의 증명은 이성적인 논증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이성의 논증을 행하는 철학과 계시에 바탕을 두는 신학을 가르는 새로운 길이 열렸으며,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의 개별성을 존중하여 개별성이야말로 사물의 본질을 완성시키는 최종적 요소라고 하였다.
프란치스칸 그리스도중심주의는 스코투스의 종합 안에서 '육화이유'와 더불어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즉, 말씀은 우선적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한 존재를 자신 밖에서 찾아내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란치스칸 신학적 성향에 따르며 '사랑'을 기초로 하고 사랑의 빛으로 받은 새로운 사고의 종합을 이루었으며 의지의 우월성을 두는 주의주의를 펼쳤다
현실에 있어서는 보편성과 개별성이 동등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하여 종래의 보편성 우위에 반대하고 개별성의 입장을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렸다. 이것은 후대에 윌리엄 오컴에 의한 개별성 우위의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지성과 의지의 관계에 대해서는 직관(直觀)의 인식을 중시하여 의지의 우위를 말하고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인식을 존중하였다. 그의 논법은 미세한 점까지 파고들었으므로 '영민한 박사'(Doctor Subtilis)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그의 독창적 사고는 스콜라 철학에 머무르면서도 토마스 주의를 비판하여 새로운 철학의 길을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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